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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시 모음, 이상희, 류시화, 용혜원 시인 비에 관한 시모음집

by skView3rd2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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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시 모음 12선, 이상희, 류시화, 용혜원 시인 비에 관한 시모음집

쏟아지는 빗줄기―어쩌면 우리는 그 속에서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합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은 과거의 추억을 깨우고, 우산 위에 흩뿌리는 소리는 마음속 대화를 이끌어 내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 현대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비에 관한 시’ 12편을 선별해 감상 포인트, 시대적 맥락, 공감각적 표현 기법 등을 함께 탐구합니다.

비 오는 날 시 모음, 비에 관한 시 모음

애틋한 그리움부터 새 출발의 희망까지, 다양한 정서를 포괄하는 비오는 날 시 모음12편 작품을 통해 비 오는 날의 서정적 깊이를 한층 더해 보세요.

비와 감성을 적시는, 비오는 날 시 모음 12편

1. 〈비가 오면〉 ―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감상 포인트

  • 나무에 의인화를 부여해 ‘비’가 만들어 내는 미묘한 차이를 보여 준다.
  • “죄를 씻는 나무”라는 구절은 인간의 속죄 의식을 자연에 투영하여 철학적 사유를 자극한다.

2. 〈비 그치고〉 ― 류시화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 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잔잔한 생명감을 선사하는 작품. 비가 그친 뒤 ‘푸르게 흔들리는’ 나무처럼, 읽는 이에게도 새로이 꿈틀거리는 삶의 에너지를 주입한다.

3.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 봄비의 세례를 ‘존재 확인’으로 전환한 탈속(脫俗)적 시선.
  •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으킨다는 이미지로 죽음 뒤에도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4.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 용혜원

내 마음을 통째로
그리움에 빠뜨려 버리는
궂은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고 부딪치니
외로워지는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면
그리움마저 애잔하게
빗물과 함께 흘러내려
나만 홀로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로
모든 것들이 젖고 있는데
내 마음의 샛길은 메말라 젖어들지 못합니다.

그리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
내가 그대를 무척 사랑하는가 봅니다.
우리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그대가 불쑥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보고 싶습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굵은 빗방울을 ‘그리움의 메신저’로 변환한다. 반복되는 “그대” 호명은 화자의 외로움을 극대화하면서도 독자에게 공감의 끈을 던진다.

5.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짧은 행 사이로 번지는 여백이 장점. 빗방울이 창문에 남긴 흔적을 인간 내면의 ‘갈망’으로 확장해 보편성을 획득한다.

6. 〈비〉 ― 천양희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군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 “퍼붓고 싶다”라는 반복적 병렬 구조로 마음의 대상을 향한 폭발적 욕구를 시각화.
  • 빗속에서 솟는 감정의 급류를 비유·반복·파열어(破裂語)로 역동적으로 묘파한다.

7. 〈장대비 내립니다〉 ― 양재건

꼭두새벽부터 장대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속 시원하냐 하며
으스대듯 내립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강바닥을 위해

시름의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을 위해
너희들 울음 쌓느라 애쓰고 애썼다며
으스대며 장대비 시원하게 내립니다.

하나에도 벅차고
지키기 힘든 사랑도
장대비 같이 와~하며
몰려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장대비도 이래서 더욱 좋습니다.

여름 장대비의 탁월한 음향 묘사(“으스대듯 내립니다”)가 시각·청각·촉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울음 쌓느라 애쓴’ 비에 인간의 한(恨)을 투사하여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8. 〈비 오는 날의 풍경〉 ― 정연복

비 오는 날
거리에는 꽃이 핀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걸어 다니는 예쁜 꽃들
송이송이 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스산한 날씨에도

꽃들이 피어
걸어 다니는 꽃들이 피어

세상 풍경이 아름답다
쓸쓸하지 않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거리 위를 걷는 꽃’으로 치환한다. 시인이 보여 주는 색채 대비는 흐릿한 날씨에도 심리적 채도를 끌어올린다.

9. 〈비 온 뒤 아침 햇살〉 ― 유승도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벌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만들래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 비와 햇살의 대비를 통해 정화(淨化)와 부활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 “거름더미에도 내려앉을래” 구절로 낮은 곳까지 품는 햇살의 포용성을 강조.

10. 〈소나기 같이, 이제는 가랑비 같이〉 ― 서정윤

소나기같이 내리는 사랑에 빠져
온몸을 불길에 던졌다
꿈과 이상조차 화염 회오리에 녹아 없어지고
나의 생명은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이 되어 이글거렸다.

오래지 않아 불꽃은 사그라지고
회색빛 흔적만이 바람에 날리는
그런 차가운 자신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순간의 눈빛이 빛나는 것만으로
사랑의 짧은 행복에 빠져들며
수많은 내일의 고통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폭풍 지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자리
나의 황폐함에 놀란다
이미 차가워진 자신의 내부에서
조그마한 온기라도 찾는다
겨우 이어진 목숨의 따스함이 고맙다

이제는 그 불길을 맞을 자신이 없다
소나기보다는 가랑비 같은 사랑
언제인지도 모르게 흠뻑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반갑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잔잔함을 지닌 채
다가오는 가랑비
한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그대의
여린 날갯짓이 눈부시다
은은한 그 사랑에 젖어있는 미소가
가랑비에 펼쳐진다

소나기의 격정적 사랑 ↔ 가랑비의 잔잔한 사랑. 두 빗물의 속도 차이가 곧 사랑의 양상을 규정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11. 〈보슬비〉 ― 김진학

가기 싫어 울던
그 땅 위에
꽃비 내린다

가면 또 그만인 길
한 많은 길 위에
춤추는 살풀이

그리도 너 좋아하던 비였지만
비 오지 않는 날은
하루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는
미안한 내 얼굴에
피가 흐른다

비의 촉촉한 질감으로 회한(悔恨)을 녹여내며, “하루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는 미안한 내 얼굴”처럼 자기성찰을 유도한다.

12. 〈이슬비 내리는 날〉 ― 유창섭

젖고 있었다
아니 젖는 듯 젖고 있었다

간간이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거꾸로 된 세상이 온통
떨어지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남의 이야기 듣는 듯 내가
내 가슴의 이야기 들어야 하는
어느 날의 목마름

  • ‘거꾸로 된 세상’ 메타포로 내면과 외부 세계의 전복(顚覆)을 암시.
  • 이슬비의 간헐적 리듬이 고독 속의 ‘목마름’을 부각한다.

비와 계절, 그리고 인간의 서사

비는 단순 기상 현상이 아니다. 봄비는 생명력, 여름 장대비는 정화와 해방, 가을비는 무상함, 겨울비는 고독을 상징한다. 이러한 계절적 맥락은 시인들에게 서사의 토양을 제공한다. 시를 감상할 때, ① 발생 계절 ② 빗방울의 크기 ③ 음향과 시각 효과를 주목하면 작품의 층위가 한층 선명해진다.

창작 팁: 나만의 ‘비 시(詩)’ 쓰기

  1. 감각 스케치: 빗소리·냄새·습도·색상을 메모한다.
  2. 관계 설정: 빗방울을 사람·사물·감정과 대응시켜 은유를 설계한다.
  3. 리듬 실험: 장대비는 단음·급행, 이슬비는 장음·완만으로 호흡을 조정.
  4. 여백 활용: 비가 남기는 공간을 행간(行間)에 반영해 여운을 확보한다.

결론

비는 흐리고 축축한 날씨를 넘어, 우리 존재의 틈새를 촉촉이 적시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오늘 소개한 12편의 시는 자연·사랑·생명·성찰이라는 네 개의 큰 물줄기를 따라 흐르며, 독자 각자 다른 지점에서 마음을 울릴 것입니다.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아 한 편씩 음미하다 보면, 창밖의 풍경도 어느새 시가 되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지 모릅니다. 비가 주는 정서적 공간을 넓혀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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