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시 모음 - 이해인 여름 시 모음
프롤로그: 무더위 속에서 피어나는 시의 향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손석철, 이상홍, 임영준, 이해인, 이채, 오정방, 이수인, 김명관, 박우복 시인들의 ‘여름 시 모음’과 ‘7월의 시 모음’을 노래한 작품을 모아 감상평과 함께 소개합니다. 여름과 7월에 관한 시 한 편, 한 편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여름의 열기를 머금은 시어들이 마음속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7월은 햇빛이 강렬해지고 매미 소리가 도시의 골목을 가득 메우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바로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을 더 시원하게 적셔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시인은 작은 단어 하나에 그늘을 드리우고, 짧은 행간 사이에 바람을 불어넣어 줍니다.
여름 / 손석철
여름 / 손석철
세월이란 그림 그리시려고
파란색 탄 물감솥 펄펄 끓이다
산과 들에 몽땅 엎으셨나 봐
시적 배경과 이미지
손석철 시인은 ‘세월’을 거대한 화가로 의인화하여, 여름 하늘을 파란 물감으로 한껏 채워 놓은 풍경을 그립니다. 파란색 물감솥이 ‘펄펄 끓는다’는 표현은 한낮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하며, 동시에 대지를 품은 큰 붓질처럼 시원하고 호방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감상
여름의 시작을 ‘파란 물감’ 한 그릇으로 설명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독자는 짙은 푸른색을 시각적으로 떠올리며, 동시에 끓어오르는 물감으로 비유된 열기를 체감합니다. 여름의 이중적인 얼굴, 즉 뜨겁지만 시원한 색채감을 한 손에 쥐어 주는 짧고 힘 있는 작품입니다.
여름 / 이상홍
여름 / 이상홍
아침부터
그늘은 일어나 무릎꿇고
기도를 했지만낡은 교각 뒤에서
떨던 몇 마리까지차례로 끌려나와
탈색당하는
정오연도에는
치를 떠는 수만의 푸른 이파리들
시적 해석
이상홍 시인은 하루의 흐름을 ‘그늘의 기도’와 ‘정오의 탈색’이라는 대비로 포착합니다. ‘그늘’은 폭염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 ‘탈색’은 정오가 빛을 독점하며 모든 색을 빼앗아 가는 잔혹성을 암시합니다.
감상
정오라는 지점에 집중한 관찰력 덕분에 독자는 그늘이 사라진 도심 풍경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치를 떠는 수만의 푸른 이파리들’이라는 묘사는 식물도 결국 뜨거운 햇살 앞에서 떨고 있음을 보여줘, 자연과 인간이 맞이한 같은 고통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여름 / 임영준
여름 / 임영준
작열하는 태양이
축복으로 느껴진다면
만끽할 수 있다세찬 장대비 속
환희를 안다면
누릴 자력이 있다노출이 자랑스럽고
자연에 당당하다면
깊게 빠진 것이다풀밭에 누워
별들과 어우러질 수 있다면
줄길 줄 아는 청춘이다
주제와 어조
임영준 시인은 ‘태양’과 ‘장대비’처럼 서로 다른 극단을 ‘축복’과 ‘환희’로 감각화합니다. 여름의 날 것 같은 에너지와 자유를 찬양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일 ‘자력’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감상
청춘의 한복판에 서 있는 독자라면 이 시 속에서 스스로의 활기를 확인할 것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는 힘, 별과 한몸이 되는 꿈, 그 모든 것이 ‘여름’이라는 은유 아래 묶입니다.
여름단상 / 이해인
여름단상 /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이렇게 기도하며
여름을 시작하는 삶의 기쁨
시적 의도
이해인 수녀 시인은 더위를 참아 내는 대신 ‘여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땀 흘림을 수용하고, 인내와 용서를 여름의 태양 아래 놓으며, 계절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감상
수동적 인내가 아닌 능동적 수용이 이 시의 미덕입니다. ‘내가 여름이 되기로’라는 선언은 독자에게도 계절과 한 몸이 되라는 부드러운 촉구로 다가옵니다. 생명력과 수용의 브랜딩을 실천하는 시인의 세계관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주요 이미지
치자꽃의 ‘하얀-노란’ 변주는 시간의 흐름과 정서의 변화, 그리고 ‘향기’의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이해인 시인은 꽃이 지며 흘리는 ‘숨은 눈물’에서 인간 삶의 연민을 발견합니다.
감상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꽃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고자 합니다. 치자꽃에서 퍼져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는 독자에게도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읽는 순간 코끝에 은은한 꽃내음이 번지는 듯합니다.
여름이 오면 / 이해인
여름이 오면 / 이해인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이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한 그루 나무가 되자고 했지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파도 소리가 마음을 흔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탁 트인 희망과 용서로
매일을 출렁이는 작은 바다가 되자고 했지
메시지와 상징
산과 바다를 직접 찾지 않아도, 마음속에 숲과 파도를 품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합니다.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와 ‘출렁이는 작은 바다’는 봉사와 포용의 이미지로 확장됩니다.
감상
이해인 시 특유의 담백하고 따뜻한 어법이 여름철 공복감을 달래 줍니다. 행동보다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면서도, 타인을 위한 ‘그늘’과 ‘파도’를 마련하자는 실천적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대에게 띄우는 여름 편지 / 이채
그대에게 띄우는 여름 편지 / 이채
사르르 눈감으면
파도소리 들리는 계절
푸른 가슴 열면
꿈 많던 시절의 바다가 있고
철 없던 시절의
그대와 내가 있지요여름이 오면 왠지 들뜨는 기분
바다와 그 바다의 추억이 그리워서일까요
곱게 접어둔 마음 한자락으로 스치는
만나고 싶은 얼굴보고 싶은 얼굴들
물안개 자욱한 옛 길을 걸어옵니다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노래
하얀 물보라의 여운이 가슴을 적셔요
돌아가고 싶은 동화의 나라
그 나라에 아직도 파랑새가 살고 있지요
진주 같은 눈망울에 구름 같은 미소로수평선 아득한 세월에도
갈매기 날으는 또 하나의 꿈을 그리며
마주앉은 동심으로 모래성을 쌓고 싶어요
쌓다가 부수고 또 쌓으며
서산 노을빛이 해변에 물들면
우리 서로 모래를 털어주기로 해요
회상과 서정
이채 시인은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꿈 많던 시절’의 바다를 소환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간극 위에 여름의 ‘바다’가 다리 역할을 합니다.
감상
노스탤지어가 이 시의 핵심 정조입니다. 과거의 ‘그대’와 다시 손잡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 ‘여름 편지’라는 낭만적 형식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다가 가진 치유력을 문학적으로 직조해 독자의 마음을 맑게 씻어 줍니다.
7월이 오면 / 오정방
7월이 오면 / 오정방
훨훨 날아가는 갈매기
옛 친구처럼 찾아올
7월이 오면
이육사를 만나는 것으로
첫날을 열어보리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7월이 오면
청포도를 맛보는 것으로
첫날을 시작하리
상징적 요소
갈매기와 청포도는 해방감과 여름의 풍요를 시각화합니다. 그리고 이육사 시인을 떠올리며 ‘청포도’의 상징성을 계승해 7월의 처음을 기념하겠다는 다짐이 인상적입니다.
감상
이 시는 계절과 문학, 그리고 미각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청포도를 입속에 넣는 순간 터지는 달콤함이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며, ‘여름의 시작 의식’이라는 흥겹고 낭만적인 장치를 제공합니다.
7월 / 이수인
7월 / 이수인
장맛비 그친 하늘 위에
구름꽃 둥둥 피어나고
풀벌레 소리 높여 노래하는
할머니 모시저고리보다
햇빛이 더 짱짱한 칠월피자두 적포도 청포도 복숭아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달
바람이 인색하게 불어도
넉넉하게 살찌우고 가는 칠월한 해의 반은 감사로 보내오니
남아 있는 소망도 접지 않게 하소서
멀리서 오고 있는 가을을 위해
자연과 일상
이수인 시인은 전통 의복 ‘모시저고리’의 흰빛을 독특한 비교 대상으로 삼아, 햇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강조합니다. 과일 이름을 열거하며 7월의 풍성함도 전합니다.
감상
장맛비 뒤의 청량감, 과일이 주는 달콤함, 그리고 ‘할머니’의 이미지를 통해 가족적 온기도 함께 전해 집니다. 한편 ‘남아 있는 소망도 접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은 계절과 삶을 이어 주는 진실한 고백으로 읽힙니다.
장마 / 김명관
장마 / 김명관
7월은
슬픈 하늘을 품고 산다
너를 사랑하고부터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마음
사랑할수록 커져가는 목마름은
그렁그렁 눈물로 맺히고
눈물방울 떨어진 자리마다
낯선 인연 풀처럼 돋아도
너는 아직도 그 자리
서정적 갈증
김명관 시는 사랑의 목마름과 장마의 습한 공기를 교차시킵니다. ‘슬픈 하늘’, ‘그렁그렁 눈물’ 등의 표현은 비와 감정의 포개짐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감상
사랑의 갈증이 장마철 공기처럼 축축하게 독자를 감싸며, ‘너는 아직도 그 자리’라는 문장에서 미완의 그리움이 절정에 이릅니다. 비 오는 창가에서 읽기에 제격인 작품입니다.
7월의 바다 / 박우복
7월의 바다 / 박우복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밀려드는 너와
흔적 없는 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너의 외침이 가슴을 때릴 때
나를 묶고 있던 온갖 기억들은
하얀 포말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슬퍼하지 말자
기뻐하지 말자
밀려드는 파도도 거부하지 말자7월의 바다는
나의 마음을 먼저 알고
아픈 추억을 만들지 않는다단 둘이만 있을지라도!
고독과 치유
박우복 시인은 ‘밀려드는 파도’와 ‘흔적 없는 나’를 대비해, 바다 앞에서 깎여 나가는 자아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는 고통을 ‘아픈 추억으로 만들지 않는다’며 독자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감상
이 시는 바다의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상실을 정화합니다. 파도가 기억을 지우는 장면은 고통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에필로그: 시로 피어난 7월의 그늘
우리는 뙤약볕을 피해 실내로 숨을지언정, 시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간다면 그늘과 바람, 그리고 물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태양이 뜨거울수록 언어를 더욱 투명하게 연마해 우리에게 차가운 수박 한 조각 같은 시어를 건네 줍니다. 이번 7월, 책장 한 귀퉁이에 이 시들을 꽂아 두고 가끔 꺼내 읽어 보세요. 푸른 잉크로 그려진 여름은 분명 우리 마음에도 한 뼘 더 짙은 그늘과 싱그러운 향기를 남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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